20230703월-다시 들린 학교
목차
대중교통으로 통학하는 기분이란?
이제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자는 마음으로 알람을 30분 더 앞당겼다. 이제는 7시 반에 일어난다.. 이렇게 일어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7시반은 나의 언제적 아침이었을까? 아마 초중딩 쯤이지 않을까? 고딩 때는 위치가 멀어 조금 더 일찍 일어났던 것 같고, 대학교는 오전 강의가 있던 1학년 때는 6시, 오전 강의를 놓아준 이후 학년부터는 내 아침의 개념이 사라졌으니까. 택배할 때는 더 일찍 일어났던 것 같다. 따지자면 내 인생에서 7시가 아침이었던 적이 많지가 않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내게는 7시가 아침의 시작이라는 애매한 인식이 있다. 군대 기상은 6시반 아니었던가? 7시에 일어나 8시 쯤부터 아침 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침의 정석으로 느껴진다. 이전에 일어난다면 일찍 일어나는 것. 어쩌다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결국 기상은 7시에 했다. 또 알람보다 일찍 깬 것이다.
잠을 늦게 자서 비몽사몽한 아침, 밍기적대며 준비해도 시간은 넉넉했고, 8시반 쯤 출발해서 오랜만에 420번을 타기 위해 논현역 방면 대로로 나갔다. 논현초를 따라 걷다보면 20년 전 기억의 길 위에 내가 서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 수 있다. 등교 시간이라 그런지 녹색어머니들도 많고, 경찰 제복을 입은 아주머니들도 볼 수 있었다. 내가 복장을 잘 모르겠는데, 진짜 경찰복이 맞나.. 아무튼 가는 길에 두어 명 정도 보았다.
공원 옆에 길이 이른 아침부터 공사중이어서 조심히 그 길을 통과했다. 이유야 잘 모르지만 다 파내진 길, 그 아래로 물이 고여있는 현장까지는 보았다. 빗물 냄새가 느껴졌으니 하수도 관련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장마철 대비 보수 작업이라던가 그런 것이지는 않으려나.
420번은 딱 신논현역 전까지 사람들이 붐비고, 한남대교를 건너 바로 있는 정류장에서 또 사람이 붐빈다. 나는 딱 그 중간에서 타는 격이므로 앉을 자리만 잘 선점한다면 꽤나 편하게 학교를 갈 수 있을 예정이었다. 마침 오늘은 그렇게 운이 좋은 케이스였고.
네부캠 시작 전 4-1학기에는 아침 강의를 들을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든 학점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 아침 강의를 하나 수강신청은 해냈으나, 한창 게임에 빠져 살던 나는 차마 수면패턴을 바꿔내는데 실패했다. 항상 새벽 2시에 자던 놈이 갑자기 6시에 기상하는 삶을 사는 게 쉬운 일일 리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힘들어도 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2시간 반을 잡고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가는 학굣길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정도, 강남에서 출발해서 가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아마 지하철 길을 선택했다면 또 금새 피로를 호소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앉아서 한번에 갈 수만 있다면야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인수기
강의실에는 10분 전에 도착했다. 한 시간 통학이 뭐 힘들냐마는, 그래도 아침이 빨라진 것까지 감안해 아메리카노 한잔 사가지고 들어갔다. 매머드 커피가 가격이 나쁘지 않더라! 물론 가성비 탑은 정문 사거리에 900원으로 파는 장소겠지만(살 거면 다음부턴 여기서 사자. 나름 단골이었는데)
오늘 배운 내용은 역행렬과 크라메르스 룰. Ax = b에서 x의 한 원소만을 원할 때는 크라메르스 룰이 상대적으로 편하다. 물론 A가 invertible하다면 그냥 거꾸로 역행렬을 곱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상황마다 이득보는 게 다르다고 한다.
이후에는 eigenvalue, eigen vector를 배웠다. 이전에 선형대수학 이야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졌던 지난 날.. 그 날들을 뒤집어 엎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고유값! 막상 배워보니까 정말 별 거였다. 풀이는 별 거 아닌데 뭔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달까.. 이걸로 말미암아 분해를 하고, 더 나아가 SVD까지 가는 모양이다.
내일까지가 중간고사 범위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일까지 SVD까지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교수님은 끝내 나를 시험을 보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신 듯하다. 대신 나를 위해서 나만의 문제를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문제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숫자만 바꿔치기하더라도 나름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또한 나만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시간대도 자유롭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내게 이정도까지의 편의를 보장해주신다고 하니 정말 감사했다. 내가 매번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나름의 호의 표시가 아니셨을까, 조심하게 생각해본다.
방 정리
이후에는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전, 이전 자취방에 잠시 들렀다. 토요일에 많은 짐을 뺐지만, 그래도 아직 빼야 할 짐이 더러 남아있었고, 이후 사용자를 위해 깨끗이 청소를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려하던 음식물 쓰레기는 이미 날파리들의 안락한 소굴이 되어버려서 그것부터 처리하는데 애를 먹었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채소들도 다 비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추 짐들을 요리조리 모아서 다음에 차가 왔을 때 한번에 꺼내서 갈 수 있도록 해두고, 이후 방 청소를 시작했다. 다 하지는 못 했고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 잠깐 들러서 또 청소할 요량이다.
짐을 다 싸니까 내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상태가 되었다. 내가 어떻게 바 선생 퇴치를 잘한 건지 한 달 주기로 얼굴을 내비치던 분들이 아직도 반응이 없으시네. 아무래도 다음 사용자가 구해지기만 하면 잘 넘겨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바앙 정리
15시까지 논현동으로 돌아와서, 집에서 가져온 짐들을 새 자취방으로 옮겼다. 그 이전에 논현동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 신고부터 했다. 부모님과는 주민센터에서 만나기로 했고, 내가 먼저 도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혼자 할 생각으로 들어갔다. 안 속에 헬스 센터가 있던데 나중에 다시 한번 들러봐야 할 듯.
말 그대로 뙤악볕, 자외선 지수도 미쳐날뛰는 날이라 가는 길에 온몸이 땀에 삐질댔다. 공공기관이라 당연히 시원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는데 웬걸. 달궈진 건물의 안 속은 불가마 같았다. 그냥 밖에서 더운 바람이 계속 들어와서 그런 것이겠지만 아무튼 최소한 1층에는 냉방 시설이 없었다. 기억 상으로 이 주민센터는 20년 전에도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3층에 위치한 주민센터에는 에어컨을 적당히는 틀어두더라.
전입 신고, 확정일자 받기, 이어 계약 신고까지. 세 단계의 절차가 있는데 어머니가 계약서를 가져오기 전까지 전입 신고까지는 해둘 수 있어서 그건 내가 혼자 했다. 대충 벽면에 붙어 있는 정책, 복지 홍보를 보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며 시간을 떼우다보니 금새 어머니가 오셨다.
계약서를 가지고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잠시 복지 상담하는 창구로 가서 내가 월세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지원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포스터를 통해서 해당 복지 사업을 보니까 복지로에서 행하는 월세 지원은 8월까지더라고. 이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물어본 것인데, 결론을 말하자면 안 되는 것으로.. 전입 신고를 오늘 했는데, 월세를 낸 이력이 3개월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아무래도 당장은 지원을 받는 게 불가능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거 미리미리 정보를 챙겨둘수 있으면 좋을 텐데, 또 일상이 바쁘면 쉽게 잊어먹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할 일을 마치고 집에서 가져온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 크게 행거와 듀얼 모니터, 테이프 정도를 가져왔다. 테이프가 있어야 냉장고 속 받침들을 고정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받침들이 하나같이 물건 두어개만 올려놔도 금새 두동강 날 듯이 금이 가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행거는 옷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행거에 걸어서 옷을 사용하다보니 안 속에 있던 받침을 떼어서 아래로 쳐박았다. 모니터는 설치를 했는데, 이제 보니 케이블들을 가져오지 않으셨다.. 설치하면 뭐하냐. 일단 아쉬운 대로 자리만 잡고 설치해뒀다. 그냥 내가 집에 한번 갔다오는 게 속편할 듯하다.
일을 마친 이후에는 나가서 아빠와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도 17시 쯤에 먹었으니 거의 점저라 보면 될 듯. 위치는 백암순대국. 그 앞에 있는 신의주 순대국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17시부터 연다는 말에 10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앞의 백암순대국으로 갔다. 여기는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는 게 아니라 소고기로 낸다고 한다. 나름의 갖가지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아무튼 순대국이 나왔는데 멀건 국이 아니라 이미 양념이 쳐져있는 느낌이었다. 간도 이미 되어 있어 피순대국 같은 느낌도 났다. 가격은 만원이라 조금 있었지만, 맛은 좋아서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아빠한테 전기 자전거 사용을 허락받았다. 아무래도 자취방에서 역삼역까지는 오르막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 자전거로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전기 자전거가 있으니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섰다.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것을 어디다 두냐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집 근처에 마땅히 둘 자리가 없어보인다. 절도의 위험도 있어서 잘 주차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회고 및 다짐
원래 내 의자를 쓰는 게 얼마만이냐, 하고 의자를 뒤로 젖힌 상태로 고정한 채 작업을 했다가 다시 원상복구를 하려고 했는데 이 놈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 문제가 발생했다. 왜 원상복구가 안 됐는지.. 기껏 편한 의자 생겼는데 다시 불편해져서 화딱지가 잠깐 났다. 냅다 짱난다 하면서 매트릭스에 누워서 일을 보다가 잠시 깜빡 잠에 들었다; 눕자마자 잠든 걸 보니 피곤하긴 했나보다.
모니터 받침대를 당근으로 내일 받아오기로 했다. 내 첫 당근 거래인 셈이다. 원래는 강남구청역에서만 거래한다고 했는데 학동역도 괜찮냐 물어보니 괜찮다 하셔서 다행이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일까지 학교 통학을 하게 될 텐데, 나름 2시간을 날려먹는 행위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활용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앉아갈 수 있는 버스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