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4-2학기(23.03.02~23.06.21)

20230331금~일-귀가, 술팸, 서울숲

제로타이 2023. 4. 3. 00:41





 

목차

     

    금요일 오전

    어제 알고리즘 스터디 이후 알고리즘 삘이 와서 문제를 마구 풀었다. 스터디에서 선정하는 문제집이 있으니 그것을 따라가면서 연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도 했고, 또 그런 게 있는 상황에서는 괜히 다 도전과제 달성하듯이 다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보니.. 근데 문제가 쉽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골드 하위권 문제도 쉽게 풀리지가 않아서 또 깜짝 놀랐다. 이런 상태로 소마에 임했으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어제 끝까지 못 푼 문제를 오늘까지 잡고, 그 이후로 몇 문제를 더 풀다가 오전이 다 가버렸다.
    헬스를 갔어야 했는데 너무 충동적으로 살았다;  알고리즘을 하는 것은 좋지만 다 스케줄을 정해둔 범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시간 내에 못 풀겠다면,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푸는 방식을 보면서 또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당연히 맞다. 너무 객기를 부리지 말자.

    알고리즘

    오늘 내용은 퀵 소트. 토니 후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으로 분할 정복의 대표적인 예시. 피벗을 정해서 해당 피벗이 현재 배열 내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로부터 분할된 배열을 재귀적으로 퀵 소트를 적용한다. 
    평균 케이스에 대한 시간 복잡도를 구할 때 시그마를 적분으로 바꾸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는데 확률에서 배웠던 부분적분이 또 나와서 어질어질.. 아직 흡수 못한 개념이라 많이 헤맨다. 교수님이 내가 문과라고 잘 못 따라올 거라 나를 계속 주시하시면서 수업을 하시는데 부정적분 부분 알려주실 때는 그 배려의 덕을 많이 봤다. 사실 나머지 부분들은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머리가 안 좋지는 않은데..😅 

    귀가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집에 돌아왔다. 잠시 논현에서 어머니 만나서 저번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와인바(를 가장한 술집)에서 간단하게 한잔 하고,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 왔다. 간단하게 한 병만 했는데 나는 간에 기별도 안 가서 역시 집에 가서 한 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기도 하고.
    떠나기 전에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들. 풍경이 좋다는 거야 원래도 항상 느끼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보다는 오랜만에 오니까, 상쾌한 공기가 정말 좋다. 확실히 서울은 공기가 좋지 않다. 상쾌하게 시원한 공기. 왜 어떤 사람들은 구태여 지방으로 내려가 사는가. 왜 귀농을 하는가. 그 이유, 멀리 있지 않다.
    집에 왔을 때는 방의 아늑함에 또 한차례 감동이 일었다. 일단 집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전에 쓰지 않거나 쳐박혀 있던 것들이 싹 정리됐다. 그리고 내 방은 내가 나간 이후 빨래 방으로 쓰이다가 오늘 내가 온다하니 잠시 빨래들은 치워뒀는지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빈 자리니까 이제 더 채워질 것도 없기도 하다. 이 자그마한 내 방, 이 방보다도 내 자취방이 작다는 것을 처음 자취방에 들어갔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정말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지간히 복 받은 집에서 자란 것 아닐까. 내가 더 바란 것도 없지만, 부족할 것 없이 자랐다. 바란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필요가 채워졌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충분히 기본이 갖춰진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리라. 뭐.. 방이 넓다는 것이 엄청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넓다는 것은 어지럽힐 공간이 더 많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새삼 살면서 느끼는 것은, 여분의 공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간은 좁을수록 좋다. 내가 다니는 곳이 적을수록 좋다. 편의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동선의 절약에서 느껴지는 편함이 널찍한 공간감이라던가, 탁 트임이라는 가치를 충분히 압도할 만큼 크다.
    아, 근데 넓은 책상은 역시 필요한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집을 얻게 된다면 좋은 책상을 둘 공간은 꼭 확보하고야 말겠다. 듀얼 모니터에 다른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겠지만 사소한 불만만 많은 학도는 공부할 공간을 가린다.  듀얼 모니터를 갖출 수 있고, 키보드 앞에 노트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고, 필요에 따라 노트를 옆에 치워둔다던가 노트를 옆으로 길게 펼치는 게 가능한 공간 확보가 가능한 책상이었으면 한다.

    사실 내가 집에 온 이유는 그게 아니다. 오랜만에 집 공기?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나는 적응한다. 그로부터 진화한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기일을 놓친 것이다. 일주일이나 지나버렸다. 내가 무너져있는 동안 챙기지 못한 작년은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나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이상 나는 잊어버려선 아니 된다. 그런데 미니건 작별한 날을 잊어서 멀뚱히 자취방에서 보낸 게 못내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찾아온 것이다. 가장 오랜 추억이 깃든 이 장소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무도 집에 없을 때면 무심코 내 방 침대에 올라가 잠을 자고 있던 미니건. 누가 집에 있으면 절대 안 그러면서.
    밖에 애들 노는 소리만 들리면 괜히 큰 소리 내면서 창문으로 달려가던 미니건. 막상 가까이 있으면 조용할 거면서.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뉘여 편히 쉬던 미니건. 내 품에서 편히 자던 미니건.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을 애써 외면한 나.
    내 공부를 핑계로 신경 쓰기를 회피한 나.
    멋대로 이별을 생각하며 들어맞지도 않는 마음의 준비를 한 나.

    지나고 보면 좋은 기억보다 갖은 후회가 더 많다.
    나는 후회할 자격은 있는 걸까.
    그걸 모르겠다는 게 가장 후회된다.

    내가 이 집을 떠나고서야 집의 소중함을 알았듯이,
    녀석이 떠나고서야 나는 내 속의 큰 공간이 비었음을 알게 됐다.

    후회한다.
    더 후회만 남기지 않으려 나는 집에 왔다.
    나를 반기지 않는 너의 빈 자리에 문득 앉아 생각한다.
    만약 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처음 작별했을 때 방문 밖으로 나가 녀석의 부재가 느껴지던 자리조차 무서웠던 시절,
    미련, 후회는 어떻게 해도 남을 것이라면서 나는 모두를 위로했다.
    정답은 사실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만으로 버터야만 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만으로 가득찰 것 같아서.
    이제 와서 돌아봐도 가장 많이 남는 것은 후회다.
    11년은 지나야 할까? 모르겠다.

    내 혼을 달래겠다. 떠나간 넋을 기리고 그 위에 내가 디딜 보드라운 토양이 쌓인다.
    짓눌린 발자국 그 위로 새어나오는 너를 위해 시를 짓겠다.
    너가 나를 잊을, 나를 불태우리라.
    후회의 잿더미 위에 작은 성을 키워보는 것이 이제 나의 꿈이 되었다.
    꿈을 띄워보리라.
    그 속은 갈라보기 전까지 모를 지언정,
    끝은 이 생, 후회들을 모두 훌훌 털어놓을 최선에 맞대어 맺으리라.
    그래, 다시금 나는 생의 기로에 섰다.
    오늘을 나는 후회할 것인가.

    토요일

    새벽에 술을 마시고 미니건 뿌린 길따라 쭉 탄천을 걷고 왔다. 이제 집에는 그 녀석의 장소가 남아있지 않으니, 기억의 흔적을 찾으러 바깥에 나가본 것이다. 그 시간 내내 오로지 그런 생각만 하면서, 도중에 돌아왔다...ㅋㅋ 몸이 너무 피곤해서 끝까지는 못 갔고, 중간에 턴. 그리고 한 병을 더 사온 뒤 필름이 끊겼다.

    12시까지는 편히 쉬어주었다. 오랜만에 돌침대에 누워있으니 새삼 딱딱한 바닥이라는 것이 체감됐다.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지만 간혹 몸이 딱딱한 바닥에 뉘여있다는 느낌이 확 들 때가 있더라고. 
    계속 널브러져 있고 싶은데 누나가 계속 괴롭혀준 덕에 제때에 약속 시간을 지키러 출발할 수 있었다. 누나가 본인 노트북을 준 덕에 내 가방은 더 무거워졌다. 

    술팸

    약속은 16시, 처음 술팸 자리를 가졌던 수원시청역으로! 근데 도중에 내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나는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번에 모인 이유는 현욱이 형이 취업을 했기 때문. 이런 자리 또 안 모일 수가 없잖냐, 바로 낮부터 해장국, 수육에 소주를 걸쳤다. 
    여기에서 배를 너무 많이 채워서 중간에 조금 쉬는 타임을 가지기로 하고 고민하다가 남정네 셋이서 방탈출까페를 갔다. 나도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재밌게 즐겼던 기억이 나서 오랜만에 하고 싶었다. 인계동이 확실히 핫플이라 그런지 지도에 나오는 곳들을 다 전화해봤지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 하나 정도는 있어서 들어가게 됐는데 난이도가 별 4개짜리.. 중간과정 다 생략하고 결국 도전 실패였는데, 전략을 잘못 세운 게 너무 아쉽다. 문제 못 풀고 넘어가려니까 너무 미련이 남는구만..

    이후에는 범맥주라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한 술집에 갔다. 외관부터 범 대가리 2개가 크게 걸려있고, 안 속으로 들어가도 범 관련 그림과 모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은 아예 빔 프로젝터로 가게에서 제작한 듯한 범 영상을 틀어놨다. 여기에서 맥주 간단하게 조금 마시고, 마지막은 준코. 준코에서도 맥주만 내리 마신 덕에 멀쩡한 상태로 집에 가게 됐다. 마음 같아서는 소주를 마구 조지고 싶지만 집에 갈 것도 생각해야 하니까.
    원래는 자취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수원시청에서 자취방까지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던 탓에 그냥 다시 한번 집으로 돌아갔다.

    일요일

    힘들게 맥북까지 다 가지고 돌아다녔지만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온 토요일. 취하지 않았기에 숙취랄 것도 없었다. 그냥 아침에 또 누워서 햇살을 받으며 빈둥대다가, 어제 다짐했던 봄 나들이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는 남이섬을 갈 생각이었다. 근데 남이섬 입장 시간이 18시까지인 마당에 가는데는 거의 3시간을 잡아야하고, 또 내가 출발하는 시간이 12시였던 지라 그다지 즐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계획을 수정했다.

    서울숲

    서울숲으로! 이전에 자전거를 자취방까지 옮길 적에 뚝섬을 거칠 때 그 인근이 서울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대충 서울숲이 중간쯤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도 많지 않겠다, 잠깐 들러보는 게 괜찮은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꽤 더웠고, 사람은 무척 많았다. 사실 당연한 거긴 하겠지만.. 이런 걸 바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서울숲도 괜찮은 관광지이긴 한 듯했다. 걷는 도중에 벚꽃이 휘날리며 나한테 휘뿌려질 때 그제야 왜 사람들이 많은지 체감이 됐다. 요컨대 지금이 한창 벚꽃 축제를 할 기간이 아닌가. 나는 한적하게 봄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거였는데 시기를 잘못 잡은 건지, 위치를 잘못 잡은 건지, 몰라도 얼굴에 스치는 벚꽃 사이를 거닐며 꽃사슴 구경도 하고, 식물원의 향긋한 내음을 느끼는 것은 퍽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리저리 싸가지고 와서 지나치게 중후해진 내 가방만 아니었다면 더 오래 돌아다닐 생각도 있었는데. 거기에다 조금 걸으니까 무릎이 또 아파서 어쩔 수 없이 15시쯤 자취방으로 출발했다. 대충 두어 시간 있었나, 나중에 사람 좀 줄어들면 다시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회고 및 다짐

    파는 샐러드는 다 먹었고, 점심에 처음으로 내가 손질한 채소들을 이용해 샐러드를 먹었다! 확실히 직접 손질한 양상추는 정말 오래 간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것이라 생각을 못했는데 내가 봤을 때는 내 보관방법이 썩 좋지도 않았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라고 써있는 것을 봤지만, 나는 사실 물기를 그다지 제대로 제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갈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싱싱한 놈을 직접 손질하는 것이 오래 가는 모양이다.
    일요일 저녁에 다시 마트에 들러서 다음에 먹을 양상추를 물색했는데, 저번에는 분명 2700원이었던 것이 오늘은 3400원이다; 심지어 상태가 좋지도 않아서 조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이전에 먹던 샐러드를 봤더니 이놈은 6000원이던 것이 5000원까지 내려갔다..? 채소가 가격변동이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계속 예의주시를 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 마트를 간 덕에 이득본 것은 파프리카. 파프리카가 전번에 3개에 5100원에 산 것이 오늘은 3개에 3000원이었다. 지금 세일 기간이라 그런 것인데, 아무래도 잔뜩 사둬야겠다.

    서울숲에 쓰레기가 아주 많았다. 환경 미화원들이 완전히 쓰레기들을 다 풀어두고 분리수거를 하고 있던데,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피크닉을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뭐.. 안 봐도 비디오다. 본인들도 이미 그런 사람들이면서 왜 그리도 꼰대를 탓하고 틀니를 욕보이는지. 나 하나쯤은, 이번 한번쯤은, 그 한번에 사람은 바뀌는 거다. 

    바선생 출몰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기어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일단 출몰한 위치 근처에는 아무리 봐도 구멍은 없었다. 찾아보니 창문틈 사이로 오기도 한다는데, 틈 사이로 들어와서는 저기까지 이동을 한 것일까? 한 마리가 보인 이상, 이 놈으로 끝날 리는 없다. 이미 어딘가에 가득 찬 이 놈들 중에 한 마리가 내 눈에 뛴 것이리라. 
    그렇다면, 전쟁이다.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불살생이라는 주의지만 내 영토를 침범한 적들에게도 적용되는 절대불문의 가치는 아니다.